넷째 날 아침, 객사 창호지 문으로 희뿌연 햇살이 스며들었다.
품속을 두 팔로 잔뜩 끌어안은 채 새우잠을 자던 막동이 퍼뜩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거친 오른손이 본능적으로 저고리 앞섶 안쪽부터 더듬었다. 누런 한지 봉서와 묵직한 구리 마패가 그대로 만져졌다. 그제야 막동의 입에서 긴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몸을 일으키려던 막동의 눈길이 머리맡 놋쇠 등잔 받침에 닿았다.
불 꺼진 등잔 받침 가장자리에 어젯밤에는 없던 시커먼 재 한 줌이 내려앉아 있었다. 막동은 미간을 찌푸리며 검지 끝으로 검은 재를 살짝 찍어 코끝에 가져다 댔다.
매캐하게 탄 종이 냄새였다.
막동의 고개가 천천히 문간 쪽으로 돌아갔다.
“……간밤에 누가 들어왔었느냐?”
문설주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아 있던 구렁이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눈곱을 떼어 냈다.
“쥐새끼 말고는 못 봤소. 이히.”
막동은 손끝에 묻은 검은 재와 능청스러운 구렁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등줄기가 어쩐지 서늘했다. 어젯밤 자기가 세상모르고 잠든 사이, 누군가 바로 이 머리맡까지 걸어 들어와 종이를 태우고 갔다는 뜻이었다.
그때 마당에서 경쾌한 발소리가 울리더니 열두 살 관노 소년 돌이가 숨을 헐떡이며 방문 앞까지 뛰어 들어왔다.
“나리! 사또께서 오늘 밤 어사 나리를 위해 큰 잔치를 여신답니다요! 고을 양반 어르신들이 다 오신대요!”
막동은 탄 종이 냄새가 가시지 않은 손가락을 도포 자락에 문질러 닦으며 단박에 고개를 저었다.
“……안 간다.”
돌이의 두 눈이 방울만 하게 동그래졌다.
“안 가시면…… 다들 수상히 여깁니다요.”
막동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문간에 앉아 있던 구렁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끼어들었다.
“잔치면 고기요? 이히.”
막동은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괜히 목청을 가다듬었다.
“크흠…… 간다. ……고기 때문은 아니고.”
같은 날 한낮, 관아 안쪽 이방의 방은 대낮인데도 서늘한 그늘이 져 있었다.
단정하게 갓을 쓴 이방의 서안 앞에 심복 사령 하나와 곱게 단장한 관기 하나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이방은 차가운 눈으로 사령을 내려다보며 낮게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객사를 샅샅이 뒤져라. 책 상자, 갓 안쪽, 이불 속, 장판 밑까지 한 군데도 빼놓지 말고.”
“예.”
이방은 이어서 곁에 놓인 백자 술병 하나를 집어 관기 쪽으로 슬쩍 밀어 놓았다.
“어사 나리 잔엔 술을 넘치도록 따르거라. ……실수인 척 옷에 쏟아도 좋다.”
관기가 놀란 눈을 들며 되물었다.
“옷에요?”
“도포가 술에 젖으면 갈아입으셔야지 않겠느냐. 벗은 옷은 그 즉시 내게 가져오고.”
이방의 입꼬리가 소리 없이 말려 올라갔다.
“밤마다 무얼 그리 품에 안고 주무시는지…… 오늘 밤엔 꼭 내 눈으로 봐야겠다.”
그때 방문 밖에서 아전의 목소리가 울렸다.
“좌수 어른 드시옵니다!”
문이 열리고 번들거리는 비단 도포에 배가 불룩 나온 육십 대 양반, 풍곡현 향청(鄕廳)의 우두머리인 좌수가 팔자걸음으로 거들먹거리며 들어섰다.
“어사가 왔다고? 어디 한양에서 온 양반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오늘 밤 내가 직접 좀 보세.”
이방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공손히 맞장구를 쳤다.
“아이고, 그러시구말구지요. 좌수 어른 눈이 이 풍곡현에서 제일 밝으시지 않사옵니까.”
해가 저물자 동헌 앞마당에는 넓은 차일이 쳐지고 붉은 등롱 수십 개가 일제히 불을 밝혔다.
자개 소반마다 기름진 전과 갈비, 떡과 과일이 수북이 올라앉았고 화려한 치마저고리를 입은 관기들이 술병을 들고 상 사이를 오갔다. 대청 상석에는 막동이 앉았고, 그 바로 곁에는 이방이 그림자처럼 붙어 앉았다. 문간 쪽 기둥 그늘에는 구렁이와 돌이가 시중을 들며 서 있었다.
막동은 상 위에 차려진 그릇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수저가 놓인 자리, 잔이 도는 차례, 관기가 술병을 들고 서는 각도. 지난 십 년 동안 양반님네 잔치판 뒤에서 수천 번도 넘게 상을 나르고 시중을 들며 눈에 박히도록 보아 온 풍경이었다.
옆자리의 풍곡현 사또는 잔치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미 얼굴이 홍시처럼 벌겋게 취해 있었다. 관기가 첫 잔을 따르자마자 사또는 손님인 어사보다 먼저 냉큼 잔을 들어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향청 좌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보란 듯이 헛기침을 했다.
“허, 사또. 귀한 손님 앞에서 첫 잔을 그리 먼저 비우시면 어찌하오.”
“꺼억…… 어?”
사또가 트림을 내뱉으며 빈 잔을 허공에 흔들었다. 그 순간 막동의 오른손이 저도 모르게 사또의 빈 잔을 두 손으로 받아 들려 앞으로 불쑥 나갔다. 평생 주인님네 술시중을 들던 종놈의 손버릇이었다.
아차 싶은 막동이 허공에서 손을 멈칫 거두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관기 쪽을 향해 낮게 일러 주었다.
“……잔은 손님께 먼저 가고, 아랫사람은 두 손으로 받드는 법이니라. 국은 오른쪽, 밥은 왼쪽에 다시 놓거라.”
관기가 화들짝 놀라 상 위의 국그릇과 밥그릇 자리를 고쳐 놓았다. 막동의 손짓과 말씨를 유심히 지켜보던 좌수가 제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허허, 과연 삼사(三司)를 거친 문신이라 다르시구려. 어사께선 상차림 법도까지 이리 환히 밝으시오.”
막동은 공연히 목이 타들어 가 헛기침을 한 번 내뱉었다.
“에헴…… 나리 댁…… 아니, 우리 집 법도가 원래 좀 엄해서.”
문간 기둥 뒤에 서 있던 구렁이가 입가를 실룩이며 막동만 들릴 만큼 작게 중얼거렸다.
“……엄하지. 이히.”
고을 양반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탄복하는 사이, 곁에 앉은 이방의 웃음기가 아주 얇게 가라앉았다.
바로 그 시각, 불 꺼진 객사 방 안에서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이방이 보낸 사령이 호롱불 하나를 켜 들고 책 상자 안을 정신없이 뒤지고 있었다. 방 한구석에 놓인 윤서겸의 갓을 들어 안쪽 테두리를 들여다보고, 개어 둔 이불을 털고, 장판 모서리까지 들춰 보았으나 봉서나 마패 같은 것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사령은 책 상자 맨 바닥에서 길쭉한 놋쇠 자(유척)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그저 볼품없는 쇠붙이 막대기라 여겼는지 상자 안에 툭 던져 넣었다.
그때였다.
우물우물.
등 뒤 어두운 문간에서 무언가를 씹는 소리가 들렸다. 사령이 기겁을 하며 돌아보니, 구렁이가 잔칫상에서 슬쩍해 온 기름진 전을 입에 물고 문설주에 비스듬히 기대 서 있었다.
얼어붙은 사령을 보며 구렁이가 전을 우물거렸다.
“……여긴 쥐가 많소.”
사령은 숨도 못 쉬고 입을 다물었다. 구렁이가 실눈을 가늘게 뜨며 비릿하게 웃었다.
“쥐는 원래 쥐구멍으로 다니는 거요. 이히.”
구렁이가 문간에서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사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린 문틈으로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구렁이는 사령이 어질러 놓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는 다가와 비뚤어져 있는 윤서겸의 갓만 두 손으로 반듯하게 고쳐 놓았다. 그러나 사령이 풀었다가 엉성하게 다시 묶어 놓은 봇짐의 매듭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었다.
다시 동헌 잔치판.
이방의 눈짓을 받은 관기가 술병을 들고 막동의 상 앞으로 다가앉았다. 관기가 막동의 잔에 술을 따르는가 싶더니, 손목이 꺾이며 술병 주둥이에서 맑은 술이 콸콸 넘쳐 막동의 흰 도포 앞섶 위로 쏟아졌다.
“아이고, 나리! 소녀가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관기가 기겁하며 엎드리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이방이 벌떡 일어섰다.
“어허, 이런 변이 있나! 나리, 어서 안방으로 드시어 옷을 갈아입으시지요. 마침 새 도포를 깨끗이 대령해 두었사옵니다.”
대청 아래 대기하던 사령이 풀 먹인 새 도포를 받쳐 들고 계단을 올라왔다. 연회장 안 모든 양반들의 시선이 일제히 막동의 젖은 앞섶으로 모였다.
막동의 오른손이 술에 젖은 도포 앞섶을 꽉 눌렀다. 그 손바닥 바로 밑에 나리의 봉서와 마패가 들어 있었다. 여기서 옷을 벗는 순간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괜찮다.”
이방이 눈웃음을 치며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젖은 옷으로 가을 밤바람을 맞으시면 고뿔 드시옵니다, 나리. 어서 벗으시지요.”
막동은 앞섶을 누른 손에 더욱 힘을 주며 턱을 치켜들었다.
“……젖은 옷이 시원해서 그런다.”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흘렀다.
목이 뻐근해서, 배가 불러서, 등이 허전해서, 방석이 배겨서에 이은 다섯 번째 생떼였다.
바로 그 순간, 옆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던 사또가 눈을 번쩍 뜨며 벌떡 일어섰다.
“시원하지! 암, 시원하고말고!”
만취한 사또는 자기 앞에 놓인 술잔을 번쩍 들더니, 보란 듯이 자기 관복 소매 위에 술을 콸콸 부어 버렸다.
“어허, 거 참 시원하다! 어사 나리 말씀이 백번 옳소!”
예상치 못한 사또의 기행에 양반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좌수도 배를 잡고 웃었다. 오직 이방 혼자만이 웃는 낯짝 그대로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이방의 시선이 막동의 앞섶을 누른 오른손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문간 쪽에 어느새 돌아와 서 있던 구렁이와 막동의 눈이 마주쳤다. 구렁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남은 전을 씹어 삼켰다.
그때 웃음을 거둔 향청 좌수가 술잔을 치켜들며 막동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허허…… 그럼 이리 시원한 김에, 어사 나리. 이 좋은 달밤에 풍류와 시(詩) 한 수가 빠질 수 있겠소?”
막동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단박에 얼어붙었다.
사령이 막동의 상 앞에 벼루와 먹, 붓과 하얀 시전지(詩箋紙)를 내려놓았다.
막동은 하얀 종이와 붓을 내려다보았다. 평생 작대기와 빗자루만 쥐어 본 손이었다. 붓을 어떻게 쥐어야 하는지조차 알 턱이 없었다.
숨 막히는 정적이 대청을 짓눌렀다. 이방은 두 손을 모은 채 막동이 붓을 들기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막동은 붓에 손도 대지 않은 채, 천천히 시선을 들어 좌수와 양반들을 둘러보았다.
“……어사는 시를 짓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요.”
좌중이 움찔 멈칫했다. 막동은 뒷짐을 지듯 손을 거두며 낮게 덧붙였다.
“먼저들 지어 보시오.”
좌수가 으스대듯 헛기침을 하더니 수염을 쓸며 고을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찬양하는 한시를 길게 읊조렸다. 옆에 앉은 향반 하나가 운을 받아 화답했고, 취한 사또가 장단을 맞추듯 “얼씨구, 태평성대로다~!” 하고 끼어들었다.
막동은 두 눈을 감고 그 소리를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떠 문간 기둥 옆에 서 있는 어린 관노 돌이를 바라보았다.
“잘들 지었소. ……그럼 이제 이 고을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도 한번 들어 봅시다.”
막동이 돌이에게 손짓했다.
“너희 관아 부엌에서 일할 때 부르는 노래 있지? 여기서 한번 해 보거라.”
돌이가 사색이 되어 얼어붙었다.
“소, 소인이요?”
돌이가 겁에 질려 옆에 선 구렁이를 올려다보았다. 구렁이가 말없이 턱짓을 했다. 돌이는 두 주먹을 꽉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부엌 아궁이 앞에서 종들이 흥얼거리던 가락을 뽑아 올렸다.
“쌀은 관아 곳간 가고…… 쭉정이만 우리 솥에…… 관아 말은 무슨 말인가…… 부어도 부어도 안 차네……”
노랫소리가 대청을 타고 흐르자, 흥겹던 잔치판이 얼음장처럼 굳어 버렸다.
누군가 놋수저를 상 위에 탁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좌수의 기름진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곁에 앉은 이방의 얼굴에서 오늘 밤 두 번째로 웃음기가 싹 가셨다. 낮에 동헌에서 “그 말, 가져와 보거라” 소리를 들었을 때와 똑같은 눈빛이었다.
막동은 얼어붙은 양반들 한가운데서 홀로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좋은 노래다.”
밤이 깊어 잔치가 파한 동헌 마당에는 등롱 몇 개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양반들이 삼삼오오 대문을 빠져나가는 사이, 빈 그릇이 담긴 소반을 나르던 돌이가 대청 아래에서 향청 좌수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이놈! 천한 종놈이 감히 양반 잔치판에서 주둥이를 놀려!”
술기운과 분이 머리끝까지 치민 좌수가 차일을 받쳐 두었던 굵은 나무 막대를 뽑아 들더니, 다짜고짜 돌이의 어깨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퍽!
비명과 함께 소반이 뒤집히고 돌이가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좌수가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막대를 치켜들었다.
대청 계단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막동의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곁에 선 이방이 서늘한 눈으로 막동의 옆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구렁이가 막동의 등 뒤로 바싹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
“……나리, 못 본 척하시오. 양반네 집안일이오.”
막동이 계단 아래로 한 발을 내디뎠다 멈췄다.
찰나의 순간, 비가 쏟아지던 밤 고개에서 진흙탕에 쓰러진 주인을 부르며 울부짖던 제 목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아무도 구해 주지 않던 밤이었다.
막동은 구렁이의 만류를 뒤로하고 성큼성큼 대청 계단을 내려갔다.
“……그 매, 내려놓으시오.”
막대를 치켜들었던 좌수가 어이없다는 듯 돌아보았다.
“어사라도 고을 양반이 천것 버릇 고치는 일에 끼어들 것은 없소!”
막동이 쓰러진 돌이의 앞을 가로막아 서며 좌수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관노는 사사로운 종이 아니라 나라의 것이오. 나라 것을 함부로 치는 걸…… 암행어사 눈앞에서 하시겠소?”
좌수가 멈칫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막동은 마당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령들을 향해 낮고 단호하게 명했다.
“좌수 어른 종아리 열 대.”
사령들이 당황해 서로의 얼굴만 번갈아 보았다. 감히 고을 좌수에게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대청 위에서 내려다보던 이방이 한 박자 늦게, 묘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어사 나리 분부시다. 받잡거라.”
그제야 사령들이 달려들어 좌수의 양팔을 붙들고 정강이를 걷어 올렸다.
짝! 짝!
회초리가 살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밤 마당 가득 좌수의 체통 잃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막동은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볼에 핏자국이 맺힌 돌이를 두 손으로 부축해 일으켰다.
“나, 나리……”
“……괜찮다.”
뒤따라 내려온 구렁이가 울먹이는 돌이의 더부룩한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리며 히죽 웃었다.
“너도 종놈이냐? 이히히.”
대청 계단 꼭대기, 등롱 그늘 아래 서 있던 이방이 돌이를 감싸 안은 막동의 등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흘렸다.
“……종놈이 종놈을 감싸는구먼.”
객사 방으로 돌아온 막동은 다친 돌이를 업어다 아랫목에 조심스레 눕혔다.
숨을 고르며 방 안을 둘러보던 막동의 눈길이 아까와 다름없이 반듯하게 놓인 윤서겸의 갓과 닫힌 책 상자를 스쳐, 방구석에 놓인 봇짐 앞에서 우뚝 멈췄다.
막동은 봇짐 앞으로 다가가 묶여 있는 무명 끈의 매듭을 손끝으로 만져 보았다.
“……이건 내 매듭이 아닌데.”
십 년 동안 주인의 짐을 묶으며 손에 익은 제 매듭법이 아니었다. 잔치가 벌어진 사이 누군가 방에 들어와 짐을 풀었다가 다시 묶어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문간에 기대앉아 있던 구렁이가 실눈을 뜨며 툭 던졌다.
“나리 매듭이 따로 있소?”
막동의 말문이 턱 막혔다. 양반이 제 손으로 봇짐 매듭을 묶을 리가 없다는 걸 깜빡한 것이다.
구렁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능청스럽게 덧붙였다.
“양반님들은 원래 짐을 손수 안 묶으시던데. 이히.”
막동은 식은땀을 삼키며 뻔뻔하게 턱을 들었다.
“……우리 집 법도가 엄하다 하지 않았느냐.”
“그러셨지. 이히히.”
키득거리던 구렁이의 웃음소리가 한순간 뚝 멎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구렁이가 방문 고리를 잡은 채, 돌아보지 않고 낮게 말했다.
“……나리. 오늘 밤 그 매, 안 막으셨으면 좋았을 거요.”
“……왜.”
“이방 어른 눈이…… 오늘 밤 제일 즐거워 보였소.”
그 말을 끝으로 구렁이가 밖으로 나가고 방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홀로 남은 막동은 굳게 닫힌 창호지 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오른손이 다시 가슴팍의 봉서를 꾹 눌렀다. 막동은 자기 몫으로 깔아 둔 비단 이불을 끌어다 잠든 돌이의 어깨 위까지 포근히 덮어 주었다.
같은 시각, 이방의 방.
객사를 뒤지고 돌아온 사령이 서안 앞에 납작 엎드려 보고하고 있었다.
“객사 방엔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책 상자 안엔 낡은 놋쇠 자 하나뿐이고……”
등잔불을 바라보던 이방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럼 몸에 지녔구먼.”
한편, 달빛조차 닿지 않는 관아 뒷골목.
아까 동헌 잔치판 구석에서 말없이 술병을 나르던 관비 차림의 젊은 여자 하나가 담장 그늘을 따라 걷고 있었다. 치마 자락 소리 하나 나지 않는 빠르고 날렵한 걸음이었다.
여자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잔치가 끝난 마당에서, 쓰러진 관노 소년을 일으켜 세우던 젊은 어사의 손바닥—양반의 손이라기엔 너무도 두껍게 박여 있던 지게 굳은살—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걸음을 멈춘 여자가 객사 지붕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차가운 눈매였다.
바로 그 위, 기와 담장 그늘 위에 고양이처럼 쪼그려 앉아 있던 구렁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내려다보며 낮게 뇌까렸다.
“……저 계집…… 관비 걸음이 아닌데? 이히.”
가짜 어사 — 조선 후기 암행어사 제도 및 삼정(三政) 문란 고증 노트
- 암행어사 임명장 세트(봉서·사목·마패·유척): 어사로 임명된 당하관 문신은 승정원에서 봉서(封書: 출두할 고을 지명이 적힌 밀봉 문서), 사목(事目: 감찰 수칙서), 마패(馬牌: 역마 징발패), 유척(鍮尺: 도량형 및 형구 검수용 놋쇠 자)을 하사받았다.
- 봉서 개봉 원칙(남대문 밖 개봉): 봉서 겉면에는 '도성 문(숭례문 등) 밖에서 개봉할 것'이 명기되어, 어사 본인도 성문을 나서기 전까지는 자신의 암행 목적지(경기 풍곡현)를 알지 못했다.
- 세곡(稅穀) 수탈과 되·말(斗斛) 조작: 조선 후기 지방 아전(호방·이방)들은 세곡 수납 시 법정 규격보다 배가 부른 큰 되를 사용해 백성들의 쌀을 초과 징수(모곡)하고, 어사 감찰 시에는 정상 규격의 되로 바꿔치기해 유척 검수를 피하려 했다.